생크림을 휘두른다.
관절 따위에 힘을 요구하지 않는
너무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에 파묻혀
뻐꾸기가 우는 줄도 모르고
편리한 무기를 계속 휘둘러댔다
나의 편안함에 갇힌 그들은
서로 뭉치었다
녹진함만을 가지고 탈피했다
발 빠른 애들만이 살아남듯
그렇게, 고소하고도
부드러운 “버터”가 태어났다.
생크림(아직 단단하지 않은)을 샀다. 그것도 아주 좋은 값에…. 원래라면 엄두도 못하지만. 반값이라니. 앗싸! 하고 누가 집어 채기 전에, 선방이었다. 어깨에 괜스레 힘이 들어갔다. 빠지지 않은 건 분명하다. 한 건 했다는 생각으로 룰루랄라. 집으로 귀가.
이것들을 어떻게 써야 할까. 뭐 아주 많다. 크림 파스타. 리소또(난 리조또라고 하고 싶다), 제빵 등.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아침에도 괜히 기분이 좋다.’아, 나 생크림 가진 멋쟁이지’라며. 앞으로 마음이 물렁해지면 생크림을 사자. 물렁함을 버터처럼 만들 수 있게. 생크림이 버터가 된다니. 갑자기 버터와 생크림의 칼로리가 궁금해졌다. 말 그대로 궁금만 했다. 궁금함을 미치게 해보고 싶었다.
속절없이 섞이는 그들이 약간은 우스웠다. 더 우스운 것은 사실, 원상복구 해야 하는 너다, 마. 난 그냥 버튼만 눌렀다. 버튼만 눌러서 모든 게 되면 좋겠다. 나에게 쉬는 버튼, 웃는 버튼, 우는 버튼, 씻는 버튼이 있었으면…. 자꾸 딴 길로 얘기가 센다. 사실을 누르면서도 반신반의했다. 과연 될까?. 남의 말을 난 잘 못 믿는다. 가끔은 해보고도 의심한다. 휴, 세상이랑 친해지려면 넌 멀었다. 웬걸, 단단해지더니 물이 조금씩 생겼다. 자들끼리 모였다. (나도 끼워줘). 흰 덩어리가 되었다. 차가운 물에 담다. 손으로 주물렀다. 실은 차가운 물이 아니다. 수도꼭지를 최대한 내 쪽으로 당겼다. 이게 차가운 물이거든. 얼음 따윈 없다. 지금은 추우니 물 따위에게 내줄 공간은 없다. 아이스크림은 환영한다. 언제나. 물이 제법 뿌졌다. 냉탕보단 덜 추운 물에 담긴 그들을 재빨리 종이 일이라는 타올로. 감쌌다. 물기는 자연히 거부되었다
부러운 생크림 자식. 참 유연하네. 나도 좀 하고 싶어졌다. 재빨리 몸을 구부려봤다. 다리의 거부에 말렸다. 정확히는 대퇴직이라는 어려운 친구에게. 맞나? 사실 모른다. 신기했다. 소금도 노는 곳에 끼워주니. 가염버터가 된다는 게.
생크림을 단단히 했다. 꿀도 넣었다. 저번에 보니까 설탕이 입자가 커서 잘 못 녹더라. 설탕이 아작아작 씹혔었다. 애꿎은 설탕만 손해를 봤다. 꿀을 넣고 자유로이 노는 그들을 방임했다. 이게 생크림이지. 식물성 휘핑크림이란 게 있다. 멋도 모르고 값이 싸서 1L짜리에 손을 댔다. 게다가 너무 달았다. 어쩔 수 없이 에그타르트를 만들었다. 이게 웬걸 맛있다. 설탕 없이도 꽤나 달다. 그래도 다음엔 안 산다. 어디 유지방도 없는 게… 더 좋은 척을 하나. 식물성이라서 다 좋은 건 줄 안 날 비난하자. 많이 먹으면 안된단다. 트랜스지방으로 변신한다고. 게다가 몸속에 떡하니 버티고서 나가지도 않는다고. 다시는 안 사. 생크림도 뭐 착하진 않다. 뭐든 과하면 저리 가라다. 이제는 동물성과 식물성 크림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얻은 게 있어서 다행인 건가?. 몰라. 아니, 동식물성 혼합 생크림도 있다니. 이건 포기다 포기.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다. 내 무거운 팔다리 대신 기권을 외친 그들을 칭찬한다.
라자냐 그릇이라고 도자기 용기를 샀다. 내가 뒤척이는 새벽에 집 앞으로 배송되었다. 부지런함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대단한….. 예쁘다. 연분홍색이다. 물러진 딸기로 만든 딸기우유 색?. 진짜 물러진 딸기는 보라색과 분홍색으론 설명이 안 된다. 케이크 시트를 만들기로 했다. 빵틀 대신 이 용기로. 대단한 창의력 있는 발상이었다. 과연 내 머리에서 나온 걸까?. 맞는 말이지만, 아직까지 믿기진 않는다. 에어프라이어, 식기세척기 사용도 된다. 전자레인지는 물론이다. 앗싸. 참 요긴하게 사용될 녀석. 박력분과 계란(전란 1개와 흰자 둘). 전란이란 표현을 베이킹하며 알게 되었다. 내가 무지한가. 아님 이 세상이 트였나. 전자가 맞다. 나도 아는 사실이다. 쯧. 그리고 바닐라 오일 한 다섯 방울과 우유와 약간의 생크림(물렁한)을 섞었다. 또 무기를 휘둘렀다. 용기를 버터로 치장시킨 후 단숨에 입혔다.고마워해라 나의 용기여. 나에게 용기도 좀 주고(헛소리이다). 에어프라이어와 오븐겸용에 구워냈다. 젠장 기름을 안 넣었다. 몸에 안 좋다는 생각에 부린 객기였다. 그게 날 자빠트렸다. 어쨌든 진행했다. 뒤 따위를 돌아보지 못하는 난 제법 멍청하다. 애꿎은 딸기에게도 소에게도 미안하다. 생크림을 낭비한 죄, 닭을 슬프게 한 죄, 너무 많아서 못 쓰겠다. 내 작품 뱉은 동생에게도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는다. 생크림과 딸기만 먹어야지. 그래도 깨달았다. 레시피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닌 것을. 분명 만들 때는 내가 대단해 보였다. 그렇진 않았다. 내가 날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곤 비추어보는 게 다니까. 어떠한 계량 따위 하지 않았거든. 그러면서 생각했다. ” 이래서 내가 요릴 좋아한다니까, 특히 베이킹을. 맘대로 해도 되잖아!!. 역시 난 타고난 거야 “. 될 수만 있다면 과거의 날 지워버리고 싶다. 그러고 보니 더 이상의 용기는 필요 없다. 더 있다간 아주 우주여행을 떠나겠어. 이제 그만 쓰고 싶어졌다. 드디어.
오늘은 그래도 새로운 용기가 왔으니. 껴안고 자야지. 용기야 내게 오라..